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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산월기(山月記), 번역

Léna Éiler 2018. 4. 14. 00:00

『山月記』 [원문: 링크]

저자: 中島敦(1942)


 농서(隴西) 사람 이징(李徵)은 아는 것이 많고 재능이 뛰어나, 당나라 천보(天寶) 말년,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고, 이어서 강남위(江南尉)의 벼슬을 맡게 되었으나, 천성이 괴팍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여 그러한 미천한 벼슬에 만족하는 것을 떳떳이 여기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관직을 떠난 뒤, 고향 괵략(虢略)에 은거하며 사람과의 연을 끊고 오로지 시짓기에만 몰두하였다. 하급 관리가 되어 속된 대관의 앞에 오래도록 무릎을 꿇기보다는 시인이 되어 그 이름을 사후 백 년에 걸쳐 남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쉽게 알려지지 않고, 생활은 날을 거듭할수록 괴로워질 뿐이었다. 이징은 점점 초조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쯤 하여 그의 용모도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살이 빠지고 뼈가 도드라져 눈빛만이 날카롭게 번쩍거려, 처음에 진사에 급제했을 때의 얼굴이 보드라운 미소년의 면모는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


 수 년 후, 빈궁함을 이기지 못하고 처자의 옷가지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드디어 절조를 굽히고, 또다시 동쪽 땅 어떤 지방의 관리로 부임하게 되었다. 한편 이것은 스스로의 시에 반쯤 절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년배의 사람들은 이미 아득히 높은 경지까지 나아가 있고, 그가 예전에 아둔하다 여겨 입에도 담지 않은 녀석들의 명령을 받들어야만 한다는 것이 왕년의 영재 이징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다. 그는 불평불만에 가득 차 만사를 짜증스럽게 여기고, 괴팍한 성질은 더더욱 억누르기 어렵게 되었다. 일 년 후, 공무상의 여행으로 여수(汝水) 근처에 묵었을 때, 그는 드디어 발광했다. 어느 밤중에 급히 안색을 바꿔 침상에서 일어나더니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외치고 뛰어내려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부근의 산과 들을 탐색해도 어떤 단서도 없었다. 그 후, 이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듬해, 진군(陳郡) 사람인 감찰어사(監察御史) 원참(袁傪)이라는 자가 칙명을 받들어 영남(嶺南)에 부임하게 되어 가는 길에 상어(商於) 땅에 묵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직 어두울 무렵에 출발하려고 하는데, 역리(驛吏)가 말하기를, 이 앞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타나니 여행자는 대낮이 아니면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은 아직 아침이 이르니 조금 기다렸다 감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참은 수행원이 많다는 점을 들어 역리의 말을 무시하고 출발하였다. 새벽 달빛에 의지해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던 그 때, 과연 한 마리 맹호가 풀숲 속에서 뛰쳐나왔다. 호랑이는 여차하면 원참을 덮칠 것처럼 보였으나, 홀연히 몸을 날려 원래 있던 풀숲 속으로 사라졌다. 풀숲 속에서 “위험할 뻔했다”고 되뇌이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참은 그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놀람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어 외쳤다. “그 목소리는 내 친구 이징이 아닌가?” 원참은 이징과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하여 친구가 적은 이징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온화한 원참의 성격이 괴팍한 이징의 성정과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풀숲 속에서는 잠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소리를 죽이고 우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때때로 새어나올 뿐이었다. 잠시 후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바로 농서의 이징이다.”


 원참은 공포를 잊고 말에서 내려 풀숲으로 다가가 추억에 젖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왜 풀숲에서 나오지 않는지를 물었다. 이징의 목소리가 답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몸이 아니다. 어떻게 염치도 없이 친구 앞에 한심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겠는가. 게다가,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틀림없이 그대의 공포와 혐오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 뜻밖에도 친구와 만나게 되어 부끄러움을 잊을 정도로 반갑다. 부디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나의 추악한 지금의 모습을 꺼리지 말고 그대의 친구 이징이었던 이 나와 대화를 해 주지 않겠나.”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으나, 그 때의 원참은 그 초자연적인 괴이를 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금도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부하에게 명해 행렬의 진행을 멈추고 자신은 풀숲 근처에 서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대화를 했다. 도성의 소문, 옛 친구의 소식, 원참의 현재 지위, 그에 대한 이징의 축사. 청년 시절에 친했던 자들끼리의 그 격식 없는 어조로 이러한 말들을 주고받은 후 원참은 이징이 어째서 이러한 모습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풀숲 속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 년 전, 내가 여행을 떠나 여수 근처에 묵었던 밤의 일이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문득 눈을 떠 보니 문 밖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밖에 나가 보니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자꾸만 나를 불러내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목소리를 쫓아 내달렸다. 무아몽중으로 달려가던 중에 어느샌가 길은 산림으로 접어들었고, 거기에 더해 어느 틈에 나는 양손으로 땅을 박차며 뛰고 있었다. 무언가 몸 속에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고, 가볍게 암석을 뛰어넘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과 팔꿈치 쪽에 털이 돋아난 것 같았다. 날이 조금 밝은 뒤에 냇가에 나아가 모습을 비추어 보니 나는 이미 호랑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 나는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이건 꿈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꿈 속에서 이건 꿈이라고 자각했던 꿈을 나는 이전에 꾼 적이 있었기에. 어떻게 해도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때,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해 깊이 두려워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것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유도 모르고 강요되는 것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이유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의 숙명이다. 나는 그 즉시 죽음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눈앞으로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안의 인간은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내 안의 인간이 눈을 떴을 때, 내 입가는 토끼의 피에 젖어 있고, 주변에는 토끼의 털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것이 호랑이로서의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어떠한 소행을 계속해 왔는지, 그것은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다만, 하루에 반드시 몇 시간은 인간의 마음이 돌아온다. 그런 때는 예전과 같이 사람의 말도 할 수 있으며, 복잡한 사고를 해낼 수도 있고, 경전의 경구를 외는 것도 가능하다. 그 인간의 마음으로, 호랑이로서의 자신의 잔학한 행위의 흔적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돌이키는 때가 가장 비참하고 두렵고 화가 난다. 그러나 그 인간으로 돌아오는 몇 시간조차도 날을 거듭할수록 점점 짧아져 간다. 지금까지는 왜 호랑이가 된 것인지를 궁금해 했는데, 최근 들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왜 예전에 인간이었던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서운 일이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내 안의 인간의 마음은 짐승의 습성 속으로 완전히 묻혀 사라져 버리리라. 마치 오래된 궁전의 초석이 점차 토사에 매몰되어 버리듯이. 그렇게 되면 결국 나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 버리고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되어 미쳐 날뛰며 오늘처럼 그대와 만나게 되어도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를 찢어발겨 잡아먹으려 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게 될 것이다. 짐승이든 인간이든 본래는 무언가 다른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점점 잊어버리게 되며 처음부터 지금의 형상을 가진 존재였다고 믿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안의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마도 나에게는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 안의 인간은 그것을 더없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이 얼마나 두렵고 가엾고 괴로운 일인가! 내가 인간이었던 기억이 사라지는 것 말이다. 이 기분은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나와 같은 형편이 된 자가 아니라면. 아, 그래. 내가 아주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 전에 하나 부탁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원참과 그 일행은 숨을 죽이고 풀숲 속의 목소리가 말하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목소리는 뒤이어 말했다.


 “별 일은 아니다. 나는 본래 시인으로서 이름을 드높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업을 아직 이루지 못하고 이 운명에 이르렀다. 원래 지으려 했던 시 수백 편은 물론 이 세상에 아직 내놓지 않았다. 유고의 소재도 이미 알 수 없게 되었겠지. 그런데 그 중에 지금도 여전히 읊어낼 수 있는 것이 수십 편 있다. 이것을 나를 위해 기록해 주었으면 한다. 딱히 이것을 가지고 시인 행세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시의 좋고 나쁨은 둘째치고, 어쨌든 모든 것을 잃고 미쳐버리면서까지 내가 생애를 통틀어 집착했던 것을 일부만이라도 후대에 전하지 않으면 죽어도 죽을 수가 없겠다.”


 원참은 부하에게 명해 붓을 들어 풀숲 속의 목소리가 이르는 것을 적도록 시켰다. 이징의 목소리는 풀숲 속에서 낭랑히 울려퍼졌다. 길고 짧은 약 서른 편, 격조는 드높고 우아하며 표현은 탁월하니, 한번 읽어 보면 지은이의 재능이 비범함을 느끼게 하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원참은 감탄하면서도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시인의 소질이 일류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일류의 작품이 되기에는 어딘가 굉장히 미묘한 점에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을까.


 옛 시를 모두 뱉어낸 이징의 목소리는 돌연 어조를 바꾸어 스스로를 비웃듯 말했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이런 비참한 몸이 된 지금도, 나는 나의 시집이 장안의 풍류꾼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꿈꾸는 일이 있다. 바위굴 속에 누워 꾸는 꿈이란 말이다. 비웃어 주게나. 시인이 되지 못해 호랑이가 된 가련한 남자를. (원참은 옛 청년 이징의 자조하는 버릇을 떠올리며 슬프게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래. 웃음거리가 생긴 김에 지금의 회포를 즉석에서 시로 읊어내 볼까. 이 호랑이 속에 아직 본래의 이징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말이다.”

 원참은 또다시 부하에게 명해 그것을 받아적게 하였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偶因狂疾成殊類 災患相仍不可逃 (우인광질성수류 재환상잉불가도)

우연한 광증이 괴인을 만들어 내니 재앙이 재앙을 낳아 도망칠 수 없도다.


今日爪牙誰敢敵 當時聲跡共相高 (금일조아수감적 당시성적공상고)

오늘의 손톱과 이빨은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으나 그 때의 목소리의 자취는 여전히 드높도다.


我爲異物蓬茅下 君已乗軺氣勢豪 (아위이물봉모하 군이승초기세호)

나는 괴물이 되어 띠집 아래 기거하거늘 그대는 이미 수레에 올라타 기세가 등등하구나.


此夕渓山對明月 不成長嘯但成噑 (차석계산대명월 불성장숙단성호)

오늘 밤 산골짜기에 밝은 달이 비추니 어설프게 읊조리는 시는 그저 울부짖음으로 화할 뿐이로다.



 바야흐로 새벽 달빛은 차갑고 흰 이슬이 땅에 내려앉는다. 나무 사이를 건너는 찬바람은 이미 새벽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기이함을 잊고 숙연히 이 시인의 박복함을 한탄했다. 이징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진다.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방금 전에 말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짐작가는 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었던 때 나는 기를 써서 사람과의 교류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했다. 사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물론 본래 고향의 귀재라고 불렸던 나에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에 가득 찬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시로써 이름을 드높이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거나 같이 시를 지을 벗을 사귀어 절차탁마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어 함께하는 것도 깨끗하다 여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두려워하는 자존심과 오만한 수치심 때문이다. 내가 옥(玉)이 아님을 인정하기가 두려웠기에 구태여 각고의 노력을 들여 다듬으려 하지 않았고, 또한 내가 옥(玉)임을 반쯤 믿고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기왓장과 어울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점점 세상과 떨어지고, 사람과 멀어지며 번뇌와 부끄러움으로 점점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키워 살찌우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누구든지 맹수를 키우고, 그 맹수를 대함이 각자의 성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 오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해하고, 처자를 괴롭게 하고, 친구를 상처입히고, 결국에는 나의 외형을 이와 같이 속마음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아주 약간의 재능을 낭비해 버린 셈이다. 인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길지만, 무언가를 해내기에는 너무나도 짧다고 하는 입에 발린 경구를 뇌까리면서, 사실은 재능이 부족함을 폭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비겁한 걱정과, 노력을 두려워하는 태만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빈약한 재능을 갖고서도 그것을 열심히 갈고 닦은 덕분에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아주 많다. 호랑이가 된 지금, 나는 점점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을 태우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 만약 지금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뛰어난 시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발표하겠는가. 거기에 더해 내 머리는 날을 거듭할수록 호랑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내가 낭비해 버린 과거는? 나는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저편의 산꼭대기의 바위에 올라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골짜기를 향해 울부짖는다. 이 가슴을 태우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어젯밤도 저쪽에서 달을 향해 울부짖었다. 누군가가 이 괴로움을 알아줬으면 해서. 그러나 짐승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그저 두려워하고 넙죽 엎드릴 뿐이다. 산도 나무도 달도 이슬도, 한 마리 호랑이가 미쳐 날뛰며 포효한다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로 뛰어오르고 땅에 엎드리며 한탄해도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이해해는 사람은 없다. 마치 인간이었을 때 나의 상처받기 쉬운 속마음을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내 털가죽이 젖은 것은 단지 밤의 이슬 때문만은 아니로다.”


 점점 주위의 어둠이 옅어져 갔다. 나무 사이를 타고 어딘가에서 새벽을 알리는 뿔피리가 서글프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만 한다. 취해야만 하는 때가(호랑이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이징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에 하나 더 부탁이 있다. 내 처자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아직 괵략에 산다. 당연히 내 운명에 대해서 알 리가 없다. 그대가 남쪽 땅에서 돌아온다면, 나는 이미 죽었다고 그들에게 고해줄 수 없겠나. 결코 오늘의 일은 말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염치 없는 부탁이지만, 외로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앞으로 길거리에서 굶어죽거나 얼어죽는 일이 없도록 뒤를 잘 봐 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네.”


 그의 말이 끝나고 풀숲 속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참도 다시 눈물을 흘리며, 기꺼이 이징의 뜻을 따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징의 목소리는 다시 방금 전의 자조적인 어조로 돌아와 말했다.


 “사실은 이것을 먼저 부탁해야 했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굶고 추위에 떨 처자보다도 나의 이 빈약한 시를 더 신경쓰는 남자이니, 이런 짐승으로 몸이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징은 덧붙여서, 원참이 영남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절대 이 길을 지나지 말았으면 한다, 그 때는 자신이 취해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덮칠지도 모른다. 또, 지금 헤어지고 나면 앞쪽에 백 보 떨어져 있는 저 언덕에 올라 이쪽을 돌아봐 주었으면 한다. 자신은 지금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겠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서 그대가 다시 이곳을 지나가며 나와 만나려고 하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하려고 함이다, 그렇게 말했다.


 원참은 풀숲을 향해 정다운 이별의 말을 주고받은 뒤 말에 올라탔다. 풀숲 속에서는 또다시 참을 수 없는 듯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참도 몇 번이고 풀숲을 돌아보며 눈물 속에서 출발했다.


 일행이 언덕 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징이 말한 대로 뒤를 돌아보고 방금 전의 숲 속의 풀숲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곧 한 마리의 호랑이가 우거진 풀숲 속에서 길가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는 이미 창백하게 빛을 잃어버린 달을 올려다보고 두세 번 포효하더니, 다시 방금 전의 풀숲으로 뛰쳐들어가 그 모습을 감추었다.



2017.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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